오페레타 <박쥐> 초연 150주년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걸작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Die Fledermaus)>는 1874년 4월 5일에 안 데어 빈 극장(Theater an der Wien)에서 초연했습니다. 1825년에 태어난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당시 48세로, 당대 최고의 스타 작곡가로서 명성을 떨쳤지요. 일설에 의하면 이 작품을 불과 6주만에 완성했다고 합니다.
오페레타는 오페라와 달리 대사와 화려한 춤이 함께합니다. 재치 만점의 이야기와 정치 풍자가 웃음을 부르고 결말도 대개 해피앤딩입니다. 특히 <박쥐>는 오페레타 중에서도 최고 걸작이라는 드높은 명예를 안고 있으며, 서곡이나 아리아는 종종 따로 연주될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이 사랑스러운 작품을 초연 150주년이 되는 해에 기념비적으로 한층 즐기실 수 있도록, 간략한 줄거리 및 작품의 감상 포인트, 작품이 탄생한 1874년의 시대적 배경을 소개해드립니다.
1874년 12월31일, 섣달그믐날. 오스트리아의 온천 휴양지 바트 이슐에 머물던 대부호 아이젠슈타인은 관공서를 비방한 죄목으로 8일간의 금고형에 처해진다. 친구 팔케 박사는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몰래 무도회에 가자고 아이젠슈타인을 유혹한다. 아이젠슈타인은 신이 나서 팔케 박사와 무도회에 참석하지만, 사실 이것은 팔케가 파놓은 함정이었다.
몇년 전, 아이젠슈타인은 가장무도회에서 돌아가던 길에 취한 팔케 박사를 거리에 내버려둔 적이 있다. 그때 박쥐 변장을 하고 있었던 팔케 박사는 ‘박쥐 박사’라고 불리면서 비웃음을 샀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팔케 박사가 아이젠슈타인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젠슈타인은 감옥으로 가는 척하며 몰래 파티장으로 갔고 아내 로잘린데가 홀로 집에 있는데 그녀의 옛 애인 알프레드가 찾아온다. 마치 진짜 남편처럼 행동하는 알프레드. 이때 형무소 소장인 프랑크가 아이젠슈타인을 연행하러 집으로 들이닥친다. 분위기에 이끌린 알프레드는 프랑크에게 자신이 아이젠슈타인이 아니라고 털어놓지 못한 채 끌려가고 만다.
아이젠슈타인은 자신을 프랑스의 귀족인 르나르 후작이라고 속이고 러시아 귀족 오를로프스키가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한다. 그곳에는 변덕쟁이 손님들이 많았다. 사실 모두 아이젠슈타인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로 팔케 박사의 작전에 협력해 변장한 것이었다. 다만, 이들은 변장했다는 것을 서로 모르고 있다. 다음은 주요 참석자 명단이다.
손님① : 아이젠슈타인의 하녀 아델레가 변장한 러시아 여배우 올가 : 아이젠슈타인에게 “우리집 하녀와 닮으셨소”라는 말을 듣지만, “친애하는 후작님, 당신같은 분은”이라고 노래하며 웃어넘긴다.
손님② : 형무소 소장 프랑크가 변장한 프랑스 기사 샤그랑 : 아이젠슈타인도 프랑스 귀족이라고 하니 프랑스인끼리 대화해 보라는 주위 사람들의 부추김에 둘은 엉터리 프랑스어를 남발한다.
손님③ : 아이젠슈타인의 아내 로잘린데가 변장한 가면 쓴 헝가리 백작부인 : 모두에게 진짜 헝가리 사람이냐는 의심을 받자 헝가리 민속 음악인 <차르다시>를 불러 의심을 잠재운다.
이 헝가리 백작부인의 정체가 자신의 아내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한눈에 반한 아이젠슈타인. 자신이 뽐내던 회중시계를 보여주면서 유혹하지만 그녀에게 회중시계를 빼앗겨버린다.
서로 정체를 숨긴 채 즐기던 파티는 절정으로 치닫고 오를로프스키가 <샴페인의 노래>를 부른다. 아침 6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아이젠슈타인과 형무소 소장 프랑크는 귀가한다.
다음날, 즉 새해 이른 아침. 술이 덜 깬 아이젠슈타인이 형무소로 출두해 보니 자신이 들어가 있어야 할 독방에 낯선 사내(아내의 옛 애인 알프레드)가 있다. 놀란 아이젠슈타인이 변호사로 위장해 상황을 살피는데, 아내 로잘린데가 알프레드를 석방시키기 위해 찾아온다. 아내의 외도를 안 아이젠슈타인은 아내를 추궁하고 해명을 요구한다. 이때 지체 없이 전날 빼앗은 회중시계를 보여주며 반격하는 로잘린데.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모든 일을 꾸민 팔케 박사가 파티 참석자들을 모두 대동하고 등장해 ‘박쥐 박사의 복수극’이었음을 밝힌다. 샴페인에 취해서 한 행동이라며 용서를 구하는 아이젠슈타인을, 로잘린데는 “모든 것이 샴페인의 취기 때문이구나”라고 말하며 용서한다. 전원이 합창하며 해피 엔딩을 맞는다.
※줄거리를 보다 간결하게 소개하기 위해 스토리 일부를 생략하거나 등장 순서를 바꾸었습니다.
Q. 어째서 연말연시에 특화된 공연인가요?
A. 한 마디로, 이야기가 12월31일과 1월1일에 걸쳐 펼쳐지거든요!
Q. 〈박쥐〉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A.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친숙한 멜로디는 물론, 속마음과 겉모습을 구분한 비에니즈의 인간미가 짙게 배어있는 점이라고 할까요. 희극이지만 밝기만 한 게 아니라 서정적인 내용도 있고, 비엔나 왈츠 뿐 아니라 역동적인 헝가리 민속 음악도 매력적입니다. 볼거리가 풍성한 작품이니 직접 감상하면서 매력 포인트를 찾아보세요!
Q. <박쥐>가 작곡된 집이 어디예요?
A.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1870∼1978년까지 지내면서 〈박쥐〉를 작곡한 집은 비엔나 막싱 거리 18번지(18 Maxingstraße)에 있습니다. 내부는 공개되지 않지만 외벽에 기념 부조가 있으니 꼭 찾아가 보세요.
Q. 어디에서 공연을 보면 좋을까요?
A. 오페레타의 전당 ‘비엔나 폭스오퍼(Volksoper Wien)’를 추천합니다. 폭스오퍼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노래·무용·연기의 삼박자를 골고루 갖추고 있는 데다 스토리가 막힘이 없어 스토리로 세계관에 쉽게 빠져들 수 있습니다. 또 〈박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오페라 극장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Wiener Staatsoper)에서 연말연시에 막이 오르는 유일한 오페레타 작품입니다. 이곳에서는 가수의 낭랑한 가성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2024년 상연 일정(비엔나 폭스오퍼): 2월 29일 / 4월 5일, 19일 / 5월 7일 / 6월 13일, 23일/ 12월 31일. 최신 정보
※비엔나 국립오페라극장은 예외 없이 매년 12월 31일에 상연하며, 폭스오퍼에서는 연말연시 외에 위 일자에도 상연합니다.
Q. <박쥐>를 더 즐길 수 있는 꿀팁을 알려주세요.
A. 극 중에 여러 번 등장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샴페인. 아시다시피 샴페인은 스파클링 와인 중 프랑스 샴파뉴 지방에서 제조되는 제품인데, 오스트리아에서는 ‘젝트(Sekt)’라고 부릅니다. 인터미션 시간에 로비에서, 또는 공연이 끝난 후 가까운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무대를 돌아보며 젝트를 한 잔 기울이는 건 어떨까요?
Q. 무대의 배경인 바트 이슐은 어떤 곳인가요?
A. 오스트리아 중부 잘츠카머구트 지방의 도시로, 소금온천이 솟아나는 지역입니다. 합스부르크 왕가 사람들이 피서를 위해 이곳 별장을 찾기 시작한 뒤 귀족이나 예술가들도 즐겨 방문하게 되었지요. 요한 슈트라우스 2세나 브람스, 레하르도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황제 프란츠-요제프 1세가 어린 엘리자벳을 보고 청혼한 장소로도 유명하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성립(1867) 후 7년. 1918년의 제1차 세계대전 패배로 인한 제국 해체 수순을 밟기 시작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몰락의 시대. 당시 황제는 실질적으로 최후의 합스부르크 제국 황제가 된 프란츠-요제프 1세였고 황후는 바이에른 출신의 엘리자벳이었다.
제국 몰락 시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성립(1867) 후 7년. 1918년의 제1차 세계대전 패배로 인한 제국 해체 수순을 밟기 시작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몰락의 시대. 당시 황제는 실질적으로 최후의 합스부르크 제국 황제가 된 프란츠 요제프 1세였고 황후는 바이에른 출신의 엘리자벳이었다.
비엔나 만국박람회 : 전년 1873년 5월∼10월까지 비엔나에서 만국박람회 개최. 프란츠-요제프 1세 즉위 25주년을 기념해 펼쳐진 대사업으로, 일본을 비롯한 35개국이 참가했고 비엔나는 단숨에 국제 도시로 거듭났다(제2막에서 무도회 손님이 다국적인 이유는 이것을 반영했다는 해석도 있다). 만국박람회는 인프라 정비나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으나 금융 위기와 콜레라의 여파로 입장객 수가 당초 예상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흥행 면에서는 크게 실패했다.
금융 위기: 1873년 5월에 거품 경제가 무너지면서 비엔나 증권거래소에서 주식이 대폭락했다. 유럽 각국과 북아메리카에도 영향을 미쳐 ‘대불황’또는 ‘1873년 공황’이라 불리는 커다란 금융 위기를 초래했다.
콜레라 팬데믹: 1873년 7월에 만국박람회 전용 호텔에서 콜레라가 발생했고 비엔나 전역으로 퍼져서 3천 명에 가까운 희생자가 발생했다.
극 중 경쾌한 멜로디와는 정반대로 1874년 비엔나에는 줄곧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막막한 앞날에 대한 답답함과 불안감. “모든 것은 샴페인의 취기 때문이라며 노래하고 춤추는, 찰나인 줄 알면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겠는가!“라 권하는 듯한 <박쥐〉. 이는 어쩌면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비엔나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선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비엔나 시립공원의 슈트라우스 동상: 바이올린에 심취한 ‘왈츠의 왕’의 모습을 재현한 황금빛 동상.
요한 슈트라우스 자택: 요한 슈트라우스가 1860년대 중반~1870년까지 살던 주택이 기념관으로 바뀌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제2의 국가라 불릴 정도로 사랑 받는 왈츠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1867년 바로 이곳에서 탄생했습니다.
막싱 거리 18번지에 있는 <박쥐>를 작곡한 집: 내부는 비공개이지만 외벽에 기념 부조가 새겨져 있습니다.
중앙 묘지에 있는 슈트라우스의 묘: 명예지구 32A-27
하우스 오브 슈트라우스: 비엔나 근교, 마을 중심부에서 호이리게(와인 레스토랑)가 많은 지역으로 이동하다 보면 나오는 하우스 오브 슈트라우스는, 1837년에 최게르니츠(Zögernitz) 가든 팰리스로 지어져 당시 비엔나 상류층의 사교장으로 쓰이던 곳입니다. 슈트라우스 가족과 칼 미하엘 지러, 요제프 라너 등이 이곳 무도회에서 연주했다고 전해지요. 2023년 가을, 전시장 및 콘서트홀, 이벤트장, 레스토랑, 음악 마스터클래스 등의 다채로운 면모를 갖추며 ‘하우스 오브 슈트라우스‘‘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콘서트홀은 뛰어난 음향 설비를 자랑해서, 걸출한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농쿠르(1929~2016)가 그가 창단한 고악 연주 단체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와 녹음할 때 이곳의 홀을 이용했습니다.